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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의 저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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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의 저항운동

1974년 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의해 소수민족의 차치권은 전면 금지되었다. 그리고 소수민족 고유의 정치·사회제도가 모두 폐지되었다. 이때 소수민족은 7개의 자치주로 분할되었다. 강력한 중앙정부의 탄압과 공격 그리고 통합 조치에 맞서 소수민족들은 분산되었던 힘을 합치고자 했다. 그래서 1976년 KNU(카렌민족연합)의 사령부가 있는 마네폴로에 NDF(소수민족공동전선)가 결성되었고, 실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정부군은 1984년부터 ‘신 4선차단’ 작전을 개시하였다.

저항운동 이미지1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전투를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고, 정부군의 군사작전을 위한 짐꾼, 인간 지뢰 제거기, 총알받이 등으로 죽어나갔다. 그런데 버마의 민주화 열기가 된서리를 맞으면서 민주화 운동가들이 NDF가 있는 곳인 마네폴로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이들 간에 DAB(버마민주동맹)이라는 우산조직이 생겨났다. 이는 버마족과 소수민족 사이에 맺어진 최초의 정치적ㆍ군사적 계약이었다.

1992년 탄 쉬위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다소 유화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는 듯 했다. 군사정권은 평화협정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정치적 차원을 떠나 군사적 차원의 합의에 한할 것, 중앙정부는 소수민족 자치주의 개발 계획에 참여할 것, 그리고 각 소수민족을 분리·개별적으로 대화할 것 등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소수민족의 반발을 가져왔다.

KNPP(커야진보민주당)이 무력투쟁을 다시 시작했으며, 샨 주의 군사조직들도 새로이 동맹을 형성하고 나섰다. 중앙정부는 이들과 주민들을 차단할 목적으로 강제 이주와 강제 징용을 명령하였다. 결국 자유로이 거주ㆍ이주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수십만의 난민, 그리고 버마 국내의 난민까지 수백만 명이 갈곳을 잃고 유랑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