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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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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민족민주동맹

위 치

97B West Shwegondaing Street Bahan Township Rangoon, Myanma

설 명

NLD는 1988년 전국적 봉기에서 드러난 국민의 열기에 부응하여 결성된 버마의 주요한 정당이며, 아웅 산 수지가 사무총장이다. NLD는 1990년 총선에서 80%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정도로 압승을 거두었지만, 아직도 의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군사정부는 NLD의 활동을 어떤 때는 부분적으로 용인했다가, 어떤 때는 강력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를테면, 1996년 10월 7일 군사정부는 NLD 회원을 포함하여 반정부 인사 등 100여명을 석방한데 이어, 8일에 아웅 산 수지에 대한 봉쇄를 해제했었다. 그러나 1997년 8월 이후 군사정부는 NLD의 궤멸을 위한 탄압을 강화했다. 다음 해인 1998년은 ‘88항쟁’ 1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NLD의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아웅 산 수지는 1988년 7월 한달 동안 그녀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는 양곤을 떠나 NLD를 지지하기 위한 활동을 네 차례나 취했고, 그때마다 번번히 군사정부로부터 차단당했다. 군사정부는 1998년 10월 43개의 NLD지부 사무실을 폐쇄하였다. 그러나 NLD는 타이를 비롯하여 세계의 곳곳에 지부를 두고 매우 활발하게 버마의 민주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버마학생민주전선

대표자

나잉 아웅(Naing Aung)

위치

P.O.Box 42. Huama, Bangkok 1024, Thailand

설명

1988년 ‘88항쟁’ 이후 군사정부의 유혈 탄압을 피해 투쟁의 장을 국경근처로 옮긴 학생들은 새로운 학생조직을 건설하였다. 학생들의 주력은 타이쪽으로 이동하였고, 일부는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국경 지역으로 옮겨갔다. 당시 학생들의 숫자는 1만 5천 여명을 웃돌았지만, 상당수는 산악밀림에 적응하지 못해 국외로 망명하거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들 가운데 3천 여명이 1988년 11월 1일부터 카렌민족해방군(KNLA)의 코무라부대에서 제1차 버마학생민주전선 대표자회의를 갖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이들은 카렌, 몬, 카레니, 카친, 산을 비롯하여 버마 국경의 소수민족해방군들과 동맹을 맺고, 군사정부의 압제에 맞서 저항운동을 활발히 펴고 있다.

그러나 1994년 소수민족 해방군들이 버마 군사정부와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동맹에 치명타를 입게 되었고, 1996년 카렌민족해방군이 다스리던 국경지역을 잃게 되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1995년 아웅 산 수지는 가택연금에서 석방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버마학생민족전선 의장 나잉 아웅과 현 부의장 모티준(1988년 ‘88항쟁’ 당시 학생운동지도자)의 편지를 받고 난 후 공개적이지는 않지만, 거의 완전한 연대를 갖는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매우 엄격한 규율과 조직 체계를 갖추고, 군사정부의 탄압에 맞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소수민족들로부터도 환영을 받고 있다. 1992년 3월 8일 군사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잠자는 개’ 전선을 비롯하여 학생들의 무장투쟁 과정에서 250여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1999년 3월 사령부 의회에서 선출한 중앙위원수만 30여 명이며, 의장은 나잉 아웅(Naing Aung)이, 부의장은 모에 티 존이 맡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고등학교 1개, 중학교 2개, 초등학교 7개를 해방 지역에 설립하여 50명의 구성원이 820여 명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2개의 병원과 11개소의 의료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집행부 사무실은 타이의 방콕에 있으며,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유럽 사무실에서는 <버마 포커스 Burma Focus>라는 격월지를 발간하고 있다.

버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대표자

내 툰 나잉(Nay Tun Naing)

위치

대한민국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원미2동 184-44번지

URL

www.freeburma.or.kr / www.dassk.com

설명

버마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거나 동의하는 한국 체류 버마인들이 1997년 ‘버마 민주화를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곧이어 NLD-LA 한국지부로서 타이 본부의 인준을 받았다. 이로서 한국의 사회단체, 학생단체, 노동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버마 민주화를 위한 국제 연대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NLD-LA 한국지부가 정식 출범하였다. 이들은 서울대 총학생회 등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한국에 있는 버마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NLD 한국지부의 건설과정과 활동]
얀나이툰을 비롯한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거나 동의하는 한국체류 버마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에 동의하는 한국체류 버마인들을 규합하여 1997년 '버마민주화를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모임을 만들기는 하였지만 한국에서 활동을 벌여낼 수 있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1999년 3월에 얀나이툰가 불법체류자로 법무부 이민국에 체포되어 고국에 송환될 위험에 처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얀나이툰은 버마가 아닌 태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태국에는 수 천명의 망명자들이 버마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서 아웅 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 본부와 연결이 되었고, 얀나이툰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하여 4월에 NLD 한국지부를 만들고 태국본부의 인준을 받았다. 이로서 한국의 사회단체, 학생단체, 노동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버마 민주화를 위한 국제연대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NLD 한국지부가 정식 출범하였다.

태국에서 활동하는 버마의 학생운동단체인 ABLDF의 부의장인 SONNY는 지난 6월말에 “아태민주지도자회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때 NLD 멤버들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를 방문하였고,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NLD 한국지부와의 연대활동을 약속하였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와의 만남 이후 7월 7일에는 한남동 버마대사관 앞에서 처음으로 '버마의 민주화와 대학교육재개를 촉구를 위한 집회'를 가졌으며, 민가협, 인권운동사랑방, 엠네스티 한국지부, 외노협 등 18개의 사회, 청년, 학생단체의 성명서를 버마 대사관과 버마 정부에 보냈다. 또한 8월 8일에는 명동에서 '88 버마민중항쟁 추모집회'를 30명의 한국 대학생들과 40명의 한국체류 버마인들인들과 함께 치루어 냈다. 99년 9월 9일은 버마 민주화 단체들이 88년 8월 8일의 버마민중항쟁의 패배를 넘어서자고 몇 년전부터 준비한 총궐기의 날이었다. 9월 6일부터 9월 9일까지 NLD 한국지부원들과 버마민주화를 지지하는 한국인들은 버마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안타깝게도 버마 내부에서는 군사정권이 계엄령을 통해 강력히 통제하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식당 등이 모두 폐쇄되었고, 10여명만 모여도 탄압이 진행되었다. 이때 500여명의 사람들이 잡혀갔다.) 큰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는 3월 12일 ‘버마 인권의 날’과 1988년 ‘88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3월 13일 학생시위를 기념하기 위하여 버마대사관앞에서 시위를 개최하였다. 한국에서 NLD 활동한 후 이들의 신원에 대한 상당부분이 한국정부와 버마 정부에 노출된 상태이다. 불법체류자인 이들은 한국정부에 신원이 노출됨으로써 강제송환의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버마 정부에 노출됨으로써 버마로 송환될 경우 처벌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